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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라보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시선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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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나 스스로는 단언하는 바이다. 내 혀가 맛보지 아니 한 지상의 맛은 거의, 존재하지 아니 한다고. 그리고 그래서 동시에 선언하는 바이다. 어떤 것도 첨가해서는 아니 되는, 그런 무례한 일탈은 용납될 수 없는, 오로지 면발과 수프와 물 조절만으로 완성되어 마땅한, 라면이야말로 이 시대의 완전식품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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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O 3103 is a standard published by the 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 (commonly referred to as ISO), specifying a standardized method for brewing tea, possibly sampled by the standardized methods described in ISO 1839. It was originally laid down in 1980 as BS 6008:1980 by the British Standards Institute. It was produced by ISO Technical Committee 34 (Food products), Sub-Committee 8 (Tea).
The abstract states the following:
The method consists in extracting of soluble substances in dried tea leaf, containing in a porcelain or earthenware pot, by means of freshly boiling water, pouring of the liquor into a white porcelain or earthenware bowl, examination of the organoleptic properties of the infused leaf, and of the liquor with or without milk, or both.
This standard is not meant to define the proper method for brewing tea, but rather how to document tea brewing procedure so sensory comparisons can be made. An example of such test is a taste-test to establish which blend of teas to choose for a particular brand in order to maintain a consistent tasting brewed drink from harvest to harvest.
The work was the winner of the parodic Ig Nobel Prize for Literature in 1999.
ISO 3103은 국제 표준화 기구 (ISO)에서 지정하는 표준이다. ISO 3101은 차를 맛보기 위해 일정하게 우려내는 방법을 규정한다. 1980년에 만들어진 BS 6008:1980 (영국) 표준을 따른다. 영국 표준이기 때문에 홍차에는 알맞지만 녹차에는 너무 진하게 나온다.
표준에 따르는 차를 우려내는 방법:
도쿄 사린 가스 사건도 나에게는 그런 정도의 일이다. 그런데 최근에 인터넷 기사를 찾아보고 의미를 궁리해보는 기회가 있었다. 그럴수 밖에 없는 몇 가지 사소한 사건들에 대해서 짧게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17년 전. 모든 언론이 옴진리교에 포커스를 맞추고, 왜 그런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파헤칠때, 하루키는 반대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언더그라운드>에서 하루키는 옴진리교도들이 아닌, 사린 가스 피해자들을 인터뷰 한다. 그냥 평범한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들. 그들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고, 그때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 우리로 변한다고 해도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생각은 2011년 동일본 쓰나미가 일어났을때 기타노 다케시의 말에서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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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먼 옛날, 지금으로부터 삼십 년도 더 지난 옛날. 내가 아직 소설가가 되기 전, 그렇다기보다 내 머릿속에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이 털끝만큼도 없었던 시절의 일이다. 이것은 진짜 있었던 일이다. 나는 그 무렵 도쿄 고쿠분지 역의 남쪽 출구에 있는 작은 빌딩 지하에서 재즈 바를 하고 있었다. 열다섯 평쯤 되는 가게로 한쪽 구석에는 업라이트피아노가 놓여 있고 주말이면 이따금씩 라이브 연주도 했다(나중에 센다가야로 이전할 때 간신히 그랜드피아노를 들여놓을 수 있었다). 꽤 많은 빚을 떠안고 있었고 일 자체도 힘들었지만, 솔직히 그런 것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아직 이십대 중반이었으니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일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가난도 고통스럽지 않았다. 아침부터 밤까지 좋아하는 음악의 바다에 풍덩 빠져서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고쿠분지는 다치카와와 가까워서 아주 자주는 아니었지만 이따금 미국인 병사가 불쑥 가게를 찾기도 했다. 그중 한 사람, 아주 조용한 흑인이 있었다. 그는 대체로 일본인 여성과 둘이 왔는데, 이십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호리호리한 여성이었다. 두 사람이 연인인지 친구인지는 내가 알 길이 없지만 굳이 얘기하자면 '친한 친구'가 가장 적당한 표현일 것이다. 내가 그 커플을 또렷이 기억하는 까닭은 옆에서 보기에도 그런 미묘한 거리감이 매우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끈적끈적한 분위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생판 남처럼 딱딱하게 대하지도 않고. 그들은 가볍게 술을 마시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재즈를 들었다. 그는 가끔 나블 불러서 "빌리 홀리데이의 판 좀 틀어주세요"라고 말했다. 응, 빌리 홀리데이 음악이면 뭐든 좋아요.
딱 한 번 그가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를 들으며 흐느껴 울던 기억이 있다. 밤늦은 시간이었고 다른 손님은 별로 없었다. 그때 그가 혼자 있었는지, 늘 같이 오던 여서와 함께였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빌리 홀리데이의 어떤 레코드를 틀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여하튼 그는 카운터 구석 자리에 앉아서 큼지막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어깨를 떨며 조용히 울었다. 나는 물론 되도록 그쪽으로 시선을 주지 않으려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빌리 홀리데이의 레코드가 다 돌아가자, 그는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계산을 하고 문을 열고 나갔다.
그것이 그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던 것 같다. 그후 일 년쯤 지나 내가 그 흑인 병사를 거의 잊어갈 무렵, 종종 그와 함께 오던 여성이 우리 가게에 모습을 드러냈다. 혼자였다. 비 내리는 밤이었다. 그날도 가게에는 손님이 적고 한산했다. 그녀는 레인코트를 입고 있었다. 그때 내렸던 비와 그녀의 레인코트 냄새가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계절은 가을이었던 것 같다. 비 내리는 가을밤, 그리고 가게 안이 조용할 때면 나는 자주 사라 본이 노래하는 '9월의 비'를 턴테이블에 올렸다. 아마 그날 밤도 그랬을 거라 짐작한다. 그런 타입의 밤이었다.
그녀는 카운터에 앉아 내 얼굴을 보고 빙긋이 웃으며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나도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그녀는 위스키를 주문했다. 나는 술을 준비해 건넸다. 그러고 나서 그녀가 내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가-그 흑인 병사가-얼마 전에 본국으로 돌아갔고, 그는 고향 사람드리 그리워질 때마다 우리 가게에 와서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를 들었다고. 우리 가게를 마음에 들어했다며, 그녀는 그리운 듯 추억을 풀어놓았다.
"그런데 그가 지난번에 편지를 보내왔어요." 그녀가 내게 말했다. "자기 대신 그 가게에 가서 빌리 홀리데이를 들어달래요." 그리고 그녀는 빙그레 미소를 머금었다. 나는 레코드장에서 빌리 홀리데이의 오래된 레코드 한 장을 꺼내 턴테이블에 올렸다. 그리고 슈어에서 나온 타입III 바늘을 레코드 홈 위에 살며시 얹었다. LP판은 멋스러운 물건이다. LP를 걸 때 우리가 취하는 일련의 동작은 생활 속에서 마주하는 주위의 다양한 형태의 행위와 어딘가에서 매끄럽게 이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LP가 언젠가는 시대에 뒤쳐진 물건이 될 줄, 그 무렵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하긴 그렇게 따지면, 내가 소설가가 되고 언젠가 나이를 먹을 거라는 사실 역시 전혀 상상하지 못했지만.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가 끝난 후, 나는 바늘을 들어올리고 레코드를 재킷에 넣어 다시 진열장에 넣었다. 그녀는 남아 있던 위스키를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섰고, 마치 바깥 세계로 나서는 특별한 준비를 하듯 레인코트를 조심스럽게 걸쳤다. 그녀는 밖으로 나갈 때, "여러모로 고마웠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러고 나서 "저야말로"라고 대답했다. 그다음에 무슨말을 해야 좋을지 그 당시 나는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좀더 제대로 된 말을, 뭔가 좀더 확실하게 마음이 담긴 말을 건넸어야 했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내 머릿속에는 도무지 적절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 세상 이별의 대부분은 그대로 영원한 이별이 되기 때문이다. 그때 입 밖에 내지 못한 말은 영원히 갈 곳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재즈란 어떤 음악인가요?"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이런게 바로 재즈지"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나에게 재즈란 그런 존재다. 꽤나 긴 정의지만, 솔직히 말해 나는 재즈라는 음악에 대해이보다 더 유효한 정의는 알지 못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中. p.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