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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에게
경제적인 관념은 뼈속 깊이까지 들어 있다.
to the core
우리는 경제적인 관념안에서 사고한다.
그 프레임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세상이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경제적으로 해석하고 해결한다.
150년 전의 사상가의 경제학에 대한 생각을 들여다 보는것은 소중한 기회이다.
아직 경제학의 프레임에 같히기 전의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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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여러 요소들에 대한 정의는 오래되었지만 (오래되어서?) 신선하다.
p72
'부'의 이름 뒤에 감추어진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은 다름 아닌 '타인에 대한 지배력'이다. 좁은 의미에서 부는 하인이나 상인, 그리고 예술가의 노동력을 자신의 유익을 위해 이용하는 힘을 뜻하고, 보다 넒은 의미에서는 국민들의 노동력을 국가의 다양한 목적을 위해(유익하든, 별로 관계가 없든, 아니면 유해하든지 부유층 기득권의 의도에 따라) 이용하는 힘을 뜻한다.
부의 힘은 그것의 지배력 아래 놓인 사람들의 가난에 대개 정비례하고, 반면 공급이 제한된 물품에 매겨진 판매가를 지불할 수 있는 구매 경쟁자들, 즉 유사한 수준의 부를 소유한 사람들의 숫자에 반비례 한다.
p80
이른바 '화폐'라는 것은 결국 채무에 대한 승인서로, 채권자의 관점에서는 노동과 재산으로, 채무자의 관점에서는 게이름과 빈곤으로 해석될 수 있다. … 그럼에도 '국가의 인준과 보증 하에 청구하는 만큼의 노동량을 주기로 또는 알선하기로 약속한 문서'야 말로 돈에 대한 이론의 여자가 없는 합당한 정의가 아닐까 싶다. 이 정의에 따르면, 금이나 은, 그리고 소금 같은 물품보다는 사람의 하루치 노동량에 의해 화폐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 옳다. 어떤 물품도 사람의 노동만큼 안정되고 일정하게 공급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p114
금전적 보수란 결국 우리가 필요로 하는 만큼 자신의 시간과 노동력을 사용한 사람에게 언젠가 훗날 그가 필요할 때 동일한 만큼의 우리의 시간과 노동력을 제공하거나, 아니면 알선해 주겠다는 일정의 '약속'인 셈이다.
p172
그러므로 교환학이란 무지(nescience) 위에 세워진 지식(science)이요, 아둔함(artlessness) 위에 새워진 기술(art)이다.
모든 학문과 기술은 그들의 적인 무지와 아둔함을 타파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삼거늘, 오직 이 학문만은 예외이다. 이 학문만은 유독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용하여 무찔러야 할 그 적인 무지를 오히려 널리 전파하고 그 생명을 연장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학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학문만은 별스럽게도 암흑의 학문이요, 그렇기에 남의 집 자식이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