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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전에 읽었던 책인데 다시 읽게 되었다. 몇 가지 조건이 맞아서 인데..
1) 책이 얇다.
2) 한나 아렌트와 하버마스를 읽기 전에 한번 봐두면 좋을까 해서..
책은 얇지만, 많은 내용을 담고 있고, 대강 아래와 같은 내용이다.
1. 인간적 삶과 정치
2. 사회적인것과 정치적인것의 차이
3. 정치는 진리의 영역이 아니다..
4. 정치가의 정치와 시민의 정치
5. 시민 연대와 권력
몇몇 문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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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는 경제 문제를 다루지 못하는 정치인의 무능을 목격했다. 뿐만 아니라 정치 논리에 얽혀 경제 문제가 제때 해결되지 못하는 병폐도 목격했다. 이런 문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정치권에서 행하는 논의를 경제 관료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치의 차원까지 경제적 관점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정치의 종말을 의마하고, 경제 중심의 독재에 모든것을 맡기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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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부의 분배 문제, 즉 정의의 문제는 정치적 문제로 남아 있다. 국가 경제의 활성화, 실업 문제, 외환 위기, 주가폭락 등은 사회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것이지만, 구조조정에 따른 개인의 삶의 파괴와 이를 위한 대책, 또는 구조조정의 인간적 타당성 문제에 대한 고려 따위는 정치적 문제에 해당되는 것이다. 부의 확대를 중심으로만 문제를 바라보는 경제 전문가의 관점에 정치의 도든 것을 맡긴다면 이 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은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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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위기는 경제가 모든 것이라는 생각이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외환 위기 때 많은 가정을 파괴하고 많은 이를 자살하게 한 것은, 경제적 환란 자체가 아니라 경제가 모든 것이라고 하는 생각이다. 경제가 무너질 때 모든 것이 무너졌다고 생각할 정도로 우리의 인생은 경제에 모든 것을 걸어두고 있었다. 꽃과 꽃병을 사는 작은 '낭비'는 경제가 모든 것이 아니라는 선언이다. 사회적 가치가 인간의 모든 가치가 될 수 없다는 선언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이 정치적 동물이라는 주장은 경제 지상주의에 물든 인간성 회복을 외치는 선언이 될 수 있다. 인간은 서로 다른 가치를 추구하고 드러내면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 이라고 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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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진리의 영역이 아니다.
정치 영역에 철학적으로 접근함으로써 생기는 결과는, 의견의 복수성과 이를 통해 나타나는 인간의 복수성의 파괴다. 이렇게 되는 근분적인 이유는 '설득'의 역할을 부정하는 '절대적 준거'를 정치 영역으로 도입한 데 있다. 이를 통해 인간의 행동은 이러한 준거와 척도에 의해 일괄적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고, 따라서 인간의 복수성은 더 이상 존중될 필요가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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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일이 법적으로 정당하다고 생각했으나 법 자체가 정당한가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그저 기계적으로 최선을 다해 주어진 일을 성싱히 수행하는 태도를 취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아이히만뿐 아니라 현실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이 아닌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그저 성싱히 수행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은 오늘날 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태도가 아닌가? 그래서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에게서 보이는 악은 특수한 형태의 악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일상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곧 이러한 악은 일상성 속에서 발견되는 악이다. 따라서 현대인도 자신이 따르고 있는 법과 자신이 하고 있는 직장의 일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생각하지 못하고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면 아히이만과 똑같은 잘못에 빠지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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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진리의 영역이 아니며, 법은 진리 자체가 아니다. 정치의 목적은 복수성을 가진 인간이 자신의 고유한 개성과 관점을 언어적 판단과 의견을 드러냄으로써 이룩되고, 이러한 의견과 판단을 제시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적 영역, 즉 정치 영역이 소멸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민은 의견과 판단을 제시해야하고, 이렇게 제시하는 의견과 판단을 중심으로 공동 행위가 형성된다. 이 공동 행위가 곧 정치적 권력의 유일한 근거다. 법은 이 근거에 의존해서만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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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단일한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는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할 영역이라는 점, 논리적 논증에 의해서가 아니라 설득을 통해 정치적 합의에 이를 수 있다는 점, 정치 영역에서는 진리 주장이 아니라 의견과 판단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정치의 중요성, 정치적 동물로서의 인간의 존재, 인간적 삶의 조건에 대한 물음 등은 경제 논리가 우리의 삶에서 모든 것을 지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문제 의식을 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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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국제 관계는 더 이상 정치적 관계가 아니라 경제 관계로 환원되어버리는 양상을 보인다. 다국적 자본과 신자유주의 정신의 결합은 국제 질서를 자본의 지배 아래 두려 한다. 여기에 문화적 다양성이나 국가 주권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 관계는 더 이상 존재하니 않는 것 처럼 보인다. 이런 시점에 정치적 의식을 강조한다는 것은, 경제 중심의 종속 관계로 국가간의 관계를 형성하는 생각에 근본적으로 반대하여 문화적 다양성을 중심으로 국가 관계를 바라보도록 하는 시각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더욱 많은 재화의 생산과 더 많은 부의 재창출을 위해 전력 질주하는 것만이 인간다운 삶의 모습이 아님을 인식하는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