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25일 토요일

인식의 범위. 나의 세계.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을 빌리면, 타인들이 우리를 이해하는 폭이 우리 세계의 폭이 된다. 우리는 상대가 인식하는 범위 안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우리의 농담을 이해하면 우리는 재미난 사람이 되고, 그들의 지성에 의해 우리는 지성 있는 사람이 된다. 그들의 너그러움이 우리를 너그럽게 하고, 그들의 모순이 우리를 모순되게 한다. 개성이란 읽는 이와 쓰는 이 양쪽이 다 필요한 언어와 같다. 일곱 살 아이에게 셰익스피어 작품은 말도 안 되는 허섭스레기이며, 만약 그의 작품이 일곱 살 아이들에게만 읽힌다면 셰익스피어는 그 아이들이 이해하는 수준에서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마친가지로 앨리스의 가능성도 애인이 공감해주는 한도에서만 뻗어나갈 수 있다.

- 알랭 드 보통



 




나는 다른 사람을 나의 세계의 폭 만큼만 인식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경험을 모든 인간의 공통점으로 확대해석 하는 사람들과 모든 현상을 너무나도 쉽게 환원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의 행동은 내 인식범위를 벗어난다. 




어떤 의미에서..


이런 생각은 내가 美에 대해 가지고 있는 나의 믿음과 비슷하다. 


영화의 해석은 크리에이터의 의도와 상관없이 전적으로 수용자의 선택이며, 사물에 대한 아름다움의 기준도 그 사물과 소통하는 사람의 상태에 따라서 1초에 수십번도 변할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게 다 상대적이야!'라고 말할 수는 없다. 아름다움은 전적으로 관찰자에 의하지만, 모든 사람이 핏속에 태초부터 가지고 있던 공통된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고, 동시대의 사람들이 숨쉬고있는 공기가 비슷하므로 일정부분 공통된 기준이 나올 수 밖에 없다는 것.









2010년 9월 11일 토요일

불편한 슬로건 '지구를 살리자'



지구를 살리자.





요새 많이 듣는 슬로건이다. 


죽어가는 지구를 살리자..





멘트에.


사람이 지구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거만함이 베여있다. 





이건마치.


기둥 갈가먹는 벌레가.


집을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천천히 갈가먹자는 이야기.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이 죽을 뿐이지.


지구는 죽지 않자나...